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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이야기 “탈북민은 북한에서 남한으로 힘들게 이사 온 우리의 이웃입니다” (사)한국모바일게임협회 정철화 부회장

글·사진 : 박선희 기자

“남한 사람들도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에 올라오면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합니다.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우리가 쉽게 누리고 있는 사소한 일상도 그들에게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바쳐야 하는 일입니다. 누군가 옆에서 함께 그 길을 안내해 준다면 남한 생활에 적응하는 탈북민들이 먼 길을 돌지 않고 조금은 쉽게 걸어갈 수 있을 겁니다.”

탈북민 정착도우미를 시작하던 시기 탈북 사연을 들으면서 그들이 당한 아픔과 고난이 고스란히 전해져 우울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모습을 보며, 사명감도 더 강해지고 뿌듯한 감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한국모바일게임협회 정철화 부회장은 경기북부하나센터 탈북민 정착도우미로 현재 3년째 활동 중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역 내 새롭게 정착하는 탈북민 수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그는 관내에 거주하는 탈북민들과 일상을 함께 보내는 경우가 많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시작한 봉사 40대 중반, 정철화 씨는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자금을 투입하여 시작한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냈다. 사업 실패에 따른 스트레스와 허무함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그의 생각이 미친 곳은 바로 봉사활동이었다.
“허무함은 결코 돈으로 치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텅 빈 마음의 공간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은 자기를 비울 수 있는 또 다른 마음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바로 1365 자원봉사 사이트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부터 검색했어요.”
자원봉사활동과 연관된 정보들을 읽어 내려가던 그의 눈에 ‘탈북민 정착도우미 모집’이라는 공고가 신기하게도 눈에 크게 들어왔다.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서 센터에 전화해서 구체적으로 안내받은 후 지원했다. 그 후 경기북부하나센터에서 탈북민 정착도우미 교육을 받은 정 씨의 마음 한쪽은 무거웠다.
“교육받는 내내 정말 이분들을 잘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탈북 과정에서 위축되고 상처받은 탈북민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심리적인 봉사를 해야 하는데, 나 자신도 마음 한쪽을 다쳐 봉사로 치유해 보겠다고 나선 상황이라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첫술에 배부르겠는가? 처음 만난 탈북민은 중국에서 7년 동안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돼지농장에서 일했던 25살의 젊은 청년이었다. 17살에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보냈던 고단하고 억울했던 탈북청년의 삶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부터라도 남한에서 새로운 삶을 잘 준비하며 시작할 수 있도록 대학에 진학할 것을 추천했다. 하지만 그는 중국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살고 있을 친척들을 먼저 데려오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수소문 끝에 막 개장을 앞둔 편의점들을 다니면서 냉장·냉동고를 설치하는 일을 추천해 주었다. 탈북청년은 작업 과정을 살펴보더니 도전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작업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라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예기치 못한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 편의점에 이 설비를 설치하는 작업은 보통 하루면 일이 끝난다. 한 곳에서 공사가 끝나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새로운 작업장까지 출근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이 필요하다.
남한 정착 초기라 버스는 말할 것도 없고, 지하철 타는 방법도 잘 몰라 서툴렀던 탈북청년은 작업장까지 찾아가는데 아무리 해도 현장을 찾을 수 없다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전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철화 씨는 그에게 “우선 눈에 보이는 것 중에 가장 큰 건물 간판이 뭐냐고 물었어요. 그렇게 차근차근 알려줬는데도 찾지 못했어요. 할 수 없이 차를 돌려 그를 만나 작업장까지 데려다준 일도 있습니다. 나중에 그 청년은 매번 일하는 곳이 바뀌는 일은 감당하기 힘들다며 그만두었어요. 다행히 작업을 함께 했던 사장님이 탈북청년의 이런 딱한 사정을 알고 전원주택 단열재를 시공하는 작업장에 소개했는데, 다행히도 지금까지 그 일을 하고 있어요. 이젠 근무 연수가 쌓이면서 기술도 늘고 월급도 450만 원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데, 제가 괜히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졌어요.”

일부 사람들의 편견에 상처받지 말기를 정 씨가 만나는 탈북민은 대부분 남성과 노부부이다. 연세가 많은 탈북민은 북한에서 생활했던 시간이 많은 탓인지 남한에 정착하는 속도도 늦다. 심지어 TV 리모컨을 조작할 줄 몰라 도움을 달라고 전화를 걸어온 적도 많다. 그들은 고향에 남겨진 자식에게 돈을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인데도 무리하게 그 일을 선택하곤 한다.
정 씨는 그러한 노부부에게 조급한 마음은 오히려 남한 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우선 남한 국민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에 가입할 것과, 나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쉬는 날이면 탈북민들과 함께 거주지 인근 경치 좋은 명소에 함께 놀러 가기도 하고, 바다를 본 적이 없는 탈북민들을 위해 먼 강원도 동해까지 같이 다녀오기도 했다.
“여행하면서 탈북민들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 나누며 서로를 이해할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도 탈북민이 처음이고, 그들도 남한 사람과 대화 경험이 많지 않은 터라 보이지 않는 경계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을 통해 서로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은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함으로써 가까운 이웃으로 지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탈북민은 북한에서 남한으로 힘들게 이사 온 이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 국민 대부분은 탈북민들을 더불어 살아가야 할 동포이며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편견을 가진 일부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얼마 전 러시아에서 벌목공으로 24년을 일하다가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이 병원에서 느닷없이 폭행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알고 보니 가해자는 알코올중독 환자로, 링거를 매단 철제고정대로 병실에 함께 있던 탈북민을 폭행해 코뼈가 부러진 사건이었다. 법률적인 절차를 전혀 모르는 피해자를 대신해 이때도 정 씨는 경찰에 신고를 해주었다. 결국 가해자는 형사처벌을 받았고, 피해자는 적절한 선에서 합의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번 일을 통해 탈북민들이 위험한 상황에 닥쳤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정 씨는 탈북민 정착도우미를 시작하던 시기 우울증을 경험했다. 탈북민 각자의 탈북 사연을 들으면서 그들이 당한 아픔과 고난이 자신의 마음 깊이 고스란히 전해져 우울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던 그의 아내는 정착도우미를 그만두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은 주변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모습을 보며, 사명감도 더 강해지고 뿌듯한 감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탈북민들과 함께 김포에 있는 애기봉 전망대에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북한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에서 북한이 고향인 이웃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생각에 행복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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