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동포사랑

E-BOOK 보기

함께하는 이야기 ‘봉사’는 나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입니다 범물종합사회복지관 소망봉사단 김순금 회장

글 : 김정 기자l사진 : 이샘 기자

벚꽃 내음이 가득한 봄날, 벚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을 찾아 자유와 활력이 넘치는 파워풀한 도시 대구로 향했다. 4시간 가까이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대구광역시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수성구 범물종합사회복지관이다.

마침 가는 날이 어르신 무료 급식 봉사 날이라 이른 아침부터 복지관을 찾은 자원봉사단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2022년 보건복지부 전국사회복지시설 평가의 모든 영역에서 A급을 맞은 복지관답게 봉사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의 주인공, 김순금 회장도 다른 봉사단원들과 함께 오늘 봉사에 쓸 두유를 나르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함께’의 함의 여러 봉사단체가 무료 급식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연두색 조끼를 입은 10여 명의 봉사단원들이 바로 김순금 회장이 이끄는 ‘소망봉사단’이다. 봉사단원 모두가 탈북민으로 구성되어 있고, 3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 중에는 회사 일을 하는 바쁜 와중에도 주말을 이용하여 봉사단에 합류하는 단원도 있고, 얼마 전까지 자궁암과 갑상선암으로 생사기로를 헤매던 여성도 있었다.
백혈병으로 새파란 청춘의 아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가슴 아픈 사연을 가슴에 묻고 사는 봉사자도 있었다. 넓은 강당에는 백여 명의 어르신들이 앉아 봉사를 온 목사님의 흥겨운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는 사이 어느덧 식사가 준비되었다.
오늘 메뉴는 잡곡밥에 두부전, 구수한 된장국과 네 가지 밑반찬, 친환경 두유다. 이제는 익숙해진 일인 듯 어르신 안내, 조리, 배달, 수거, 설거지가 톱니바퀴처럼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진다. 노래와 박수 소리로 후끈하게 달아올랐던 강당엔 어느덧 숟가락 뜨는 소리만 들린다. 다른 한쪽에서는 늦게 도착한 어르신들이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린다. 오늘 탈북민 봉사단이 맡은 영역은 설거지, 김순금 회장이 직접 손뜨개로 만든 장갑 모양의 수세미를 단원들에게 나누어준다.
하얀 모자를 쓰고 연두색 앞치마를 두른 봉사단원들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빈 도시락들을 날렵하게 여러 과정을 거치며 깔끔하게 마무리해준다. 김순금 회장은 제일 어려운 잔반을 처리하고 애벌 헹굼을 하는 곳에서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부지런히 손놀림을 하고 있었다. 또 다른 봉사단체를 담당한 사회복지사는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김순금 회장이라고 말했다.
시도 때도 없이 부탁을 드려도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받아들이는 분이 바로 김 회장이란다. 남북 주민 너나 할 것 없이 ‘봉사’의 한마당에서 함께 나누고 베푸는 모습에서 ‘함께’라는 단어의 함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신을 반겨주고 찾아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거기서 사는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봉사로 다시 찾은 삶 바쁜 시간대가 한참 지나서야 김순금 회장을 따로 만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고향이 함경북도 무산인 김 회장은 무산광산에서 근무하다가 1998년 기아에 시달리던 끝에 두만강을 넘었다고 한다.
중국 길림성 어느 시골 마을에서 살던 그는 북한에 홀로 남겨진 딸이 남의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나물 캐러 다니고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착한 남편이 사면팔방 수소문 끝에 딸을 중국으로 데려왔고 그렇게 그들 모녀는 함께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국적조차 없는 중국에서의 생활은 늘 그들 모녀를 북송이라는 두려움에 떨게 하였고 결국 그들은 목숨을 건 남한행을 선택하였다. 중국인 남편까지 세 식구가 한국 땅에서 평화롭게 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한국 생활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신경섬유종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고 그 병으로 한쪽 눈이 실명된 상태였다.
하나밖에 없는 딸 또한 유전으로 같은 병을 앓고 있었는데 점점 커진 종양으로 고생하다가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고 끝내 성대결절이라는 후유증까지 겪게 되었다. 거기다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남편은 그들에게 도움은커녕 오히려 걸림돌이 됐다. 남편은 그들에게 다시 중국에 돌아가길 권고했으나 대한민국을 고향처럼 여기고 있던 그는 그 제의를 거절했고 그렇게 그들은 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남편마저 중국으로 돌아가고 희귀병을 앓는 그들 모녀는 병으로 인한 외모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과 어울리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딸은 두 차례의 극단적인 시도까지 할 정도로 삶의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위해서라도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것이 곧 자기 자신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저것 고민을 이어가던 그에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되어준 것이 봉사였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었지만, 그냥 받는 것보다는 몸으로나마 남을 위해 바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데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신을 반겨주고 찾아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거기서 사는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남들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속으로 곪아가던 남모르는 아픔과 말 못 할 사연도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치료를 받은 듯이 말끔히 가셔졌다. 삶의 막바지에 다다른 순금 씨에게 봉사는 그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잡아준 든든한 동아줄이었다.
김순금 회장이 인터뷰 내내 강조한 것은 바로 자신을 믿고 따라준 회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다. 그들 역시 마음속에 아픈 사연이 있고 불치의 병을 가진 몸이지만 봉사라는 하나의 따뜻한 공간에서 서로 의지하고 보듬으며 하나로 똘똘 뭉쳐 있었다.
한두 해도 아니고 장장 10여 년을 하루 같이 봉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봉사가 있어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가 생겼고 삶의 활력이 넘치기에 그는 자신의 기력이 다할 때까지 이 일을 손에서 놓지 않을 거라고 확신에 넘쳐 이야기한다.
따뜻한 봄날에 만난 꽃처럼 아름다운 김순금 회장, 그에게서 넘치는 향기는 그 어느 꽃보다 진하고 사람들 마음속 구석구석으로 스며들고 있다.

김순금 회장에게 삶의 희망을 안겨준 것은 대가 없이 베푸는 봉사활동이었다.

개인정보수집·이용에 대한 동의

-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목적 : 동포사랑 웹진 메일 발송
- 수집하는 개인정보 항목 : 필수항목 : 이메일
- 개인정보 보유·이용기간 : 개인정보 수집 목적 달성시 까지, 고객구독 취소시 즉시파기 ※ 귀하께서는 본 안내에 따른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대하여 동의를 거부하실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개인정보의 수집‧이용에 동의를 거부하시는 경우 동포사랑 웹진을 메일을 통해 받으실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