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동포사랑

E-BOOK 보기

정착 이야기 그냥 오는 운은 없습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으면 만나게 되는 거죠 태성산업 조건우 대표

글·사진 : 박선희 기자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에게나 삶을 바꿀 수 있는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다. 기회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삶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꾸준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기회가 머물 바탕을 만들어놓지만, 아무런 노력 없이 성공을 꿈꾼다면 기회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오늘의 주인공은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살아온 덕분에 인생을 바꿀 절호의 기회를 잡은 탈북민 조건우 씨다. 요즘 말로 MZ세대를 대표하는 젊은 패기와 열정을 갖춘 36살 조건우 대표는 인테리어 공사로 바쁜 와중에도 <동포사랑> 취재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훤칠한 외모와 상대를 배려하는 차분하면서도 낮은 목소리…. 안전모를 벗고 마스크를 내리며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는 조건우 대표의 첫인상이다. 그는 현재 종합건설, 패널 시공, 각종 인테리어 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태성산업’을 5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 조 대표가 일하는 현장의 소음 수준은 높았다. 기중기에 매달린 커다란 패널이 처음에는 중심을 잡지 못해 기우뚱하더니 조금 지나 창공으로 서서히 올라간다. 구조물 벽면에 설치된 이동식 작업대에 몰려 있던 사람들은 기중기에 매달려 올라오는 시공 자재를 조심스럽게 잡아 현장에 내려놓는다. 그는 기중기 옆에서 신중하게 신호를 보내면서 작업을 지휘했다.
공사가 한창인 이곳은, 구조물 공사가 끝나고 인테리어 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8개의 업체가 동시에 일을 시작한 경기도 이천시 외곽의 대형물류 창고 건설 현장이다.
2014년 남한에 정착한 조 대표는 북·중 국경 지역인 양강도 혜산 출신이다. 북한에서 그의 직업은 국경장사꾼(밀수꾼)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중국으로 오게 되었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남한행을 결심했다. 국경 지역에서의 장사로 돈을 벌 수는 있었지만 27살 조건우 청년이 갈망하는 자유는 결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원 수료 후 대학이나 학원이 아닌 택배회사에 취직했다.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이 우선이었고, 북한에서도 공부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학에 갈 생각은 애당초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야심 차게 시작한 택배 일은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한계에 마주쳤다. 아직 남한 도로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데다, 택배량이 많은 날이면 하루 종일 다리에 쥐가 나도록 뛰어다니고, 집에 돌아오면 죽은 듯이 곯아떨어지기에 바빴다.
“쉬운 일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당시 월급은 180만 원 정도였고요. 이 돈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결국 택배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로 선택한 일자리는 이삿짐을 나르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이삿짐센터에서 일당을 받고 일하다가 3개월 후 직접 이삿짐센터를 차렸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일감이 들어오면서 택배기사로 일할 때보다 돈도 잘 벌고 일도 수월했다. 그런데 회사가 안정이 되고 자리가 잡혀갈 무렵 코로나19가 터졌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이삿짐을 예약하는 고객들도 줄어들면서 조 대표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상황이 어렵다고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문을 구하고, 새로운 일자리도 구해보려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위기를 기회로 바꿔줄 은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

단 한순간도 허투루 임하지 않는 자세가 조건우 대표의 성공 비결이다.

우연한 만남이 인생을 바꾸는 기회로 조 대표가 말하는 은인은, 인테리어 종합 업체인 ‘월드 ENG’ 김기열 사장이다. 남한 출신 사업가인 그는 오래전부터 탈북민 일자리 소개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한 부모 가족 탈북민들을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오늘도 작업장에서 조건우 대표와 김기열 사장은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닌다. 덕분에 김기열 사장의 인터뷰도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조건우 대표는 첫인상에도 나타나듯이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인테리어 패널 시공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고, 이 작업에 필요한 기술이나 현장의 구체적인 일들에 대해 질문도 하면서 열정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 친구는 어떤 일을 맡겨도 잘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조 대표가 지금도 나를 은인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첫 만남도 우연히 이루어졌고 기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주인공은 조건우 대표 자신입니다.”
오랜 기간 대형 물류 창고 인테리어 사업을 책임졌던 김 사장은 그동안 공사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상대해 보았다. 덕분에 그는 일을 배우려는 의지와 노력, 간절한 마음가짐이 있는 사람과 일시적 충동으로 인테리어 사업에 뛰어들려고 하는 사람을 금방 가려낸다.
김 사장은 조건우 대표와 건설 현장에서 함께 일하면서 그의 성실함을 인정한 뒤 협력업체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업체를 꾸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김 사장의 업무는 원청으로부터 인테리어 공사와 관련된 작업을 지시받으면, 작은 협력업체들을 직접 선발해서 공사에 참여시킨다. 한마디로 건설 현장의 한 부분을 책임진 수장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김 사장의 도움과 격려로 조 대표는 100% 탈북민들로 구성된 인테리어 패널 공사 업체인 ‘태성산업’을 만들었고, 지금은 20대~50대의 탈북민 7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조건우 대표는 상황에 따라 두 개의 직함으로 불린다. 단독 공사를 맡아 현장에 나갈 때는 ‘태성산업’ 대표로, 대형 물류 창고 건설 현장에서는 인테리어 패널 시공 팀장으로 불린다. 지금은 베테랑 인테리어 기술자지만, 처음에는 기중기에 패널을 제대로 묶지 못해 중간에 떨어뜨리는 아찔한 사고도 냈었다.
“건설 현장에서 작은 실수는 바로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일이 서툴다 보니 연속 사고가 발생하고 그때마다 현장 책임자의 날 선 욕설을 피할 수 없었지요. 건설일은 오늘 하고 내일 그만둬도 특별히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문 기술이 필요한 대형 물류센터의 인테리어 공사는 여러 협력업체가 함께 작업하기 때문에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협력업체로 지정되기 어렵다.
공사장 인테리어 작업은 어떤 한 부분이 잘못되면 구조물 전체를 다시 뜯어야 하고, 그에 따르는 손실은 어마어마하다. 작업 공정이 늦춰지고 금전적 손해가 동반되는 만큼 무엇보다 기술적인 숙달이 우선되어야 한다.
조 대표는 그동안 자신이 실수한 부분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작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인테리어 패널 시공과 연관된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꼭 필요한 부분은 형광펜으로 체크하고, 공사에 필요한 기술적인 부분은 카메라로 일일이 찍어 저장했다.
“김 사장님이 우리 업체를 믿어주고 작업을 맡긴다고 해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다음 공사에 참여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한두 번의 잘못이야 실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반복되는 실수는 결코 용납될 수 없지요. 행운이란 것도 성실함과 노력으로 준비된 연후에야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조건우 대표는 올해 초 사랑스러운 딸을 얻는 행복한 순간도 맞이했다.

나에게 가족은 생명 남한 정착 후 인테리어 사업과 함께 인생을 바꿀 기회를 잡은 조건우 대표에게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2년 전 북한 출신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렸고, 올해 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딸이 태어난 것이다.
“힘들게 일하다가도 아내와 딸의 얼굴을 보면 열심히 일한 데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배가됩니다. 나에게 가족은 생명입니다.”
가족이 생명인 그에게 아내는 어떤 존재일까? "나에게 아내는 영원한 길동뭅니다."라고 대답하는 그에게서 북한 출신 남자다운 기백이 느껴졌다. 그에게 아내는 혼자가 아닌 함께 있다는 사실을 매일 매 순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삶의 동반자다.
지금의 아내에게는 조 대표와 재혼하기 전 딸이 있었다. 지금은 벌써 16살이 되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딸을 새로 얻은 30대 젊은 아버지의 심정이 궁금했다.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일은 저의 삶에서 가장 잘한 선택입니다. 선택했으면 책임을 져야 하지요. 그냥 책임이 아니라 사랑과 믿음으로, 이해와 배려로 가정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다 큰 아이를 딸로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지 않겠냐고 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를 선입견 없이 아버지로 받아준 딸이 기특하죠. 부족한 저를 잘 따라주고 이해해주는 딸에게 더없이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그는 북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초반에 일찍 결혼했다. 다음 해 딸이 태어났고 지금 함께 사는 딸과 거의 비슷한 나이다. 그래서 더 친딸처럼 사랑하고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9년 전 그는 혼자였다. 지금은 눈만 마주쳐도 진심을 알 수 있는 아내와, 아버지를 이해하고 받아준 성숙한 16살 사춘기 딸, 까만 눈동자에 온 우주가 담긴 소중한 둘째 딸까지 네 식구가 되었다.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갖는 책임감은 무거운 짐이 아닌 날아갈 듯한 행복으로 채워지고 있다.
얼마 전 대형 인테리어 업체로부터 함께 일해보자는 제의를 받았다. 대형업체가 먼저 스카우트 제의를 한 만큼 보수도 높다. 성실함과 책임감이 현장에서 빛을 보면서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좋은 기회였지만 그는 대형업체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정착 초기 인생을 바꿀 기회를 준 김기열 사장과 앞으로도 늘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제 믿음과 신뢰로 연결되어 끊으려 해도 결코 끊을 수 없는 사이로 살고 있다. 김 사장은 요즘, 조건우 대표 때문에 외모에 많은 신경을 쓴다며 농담 섞인 불평을 털어놓으면서도, 조 대표가 사실 수려한 외모보다 내면의 강인함과 진심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라며 훈훈한 칭찬으로 웃음꽃을 피웠다.
조 대표는 끝으로 그동안 남한 정착 생활을 돌이켜보며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를 남겼다.
“남한에서 살면서 가진 생각입니다. 사람은 운도 따라야 하지만 그보다도 본인이 노력하고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운 좋게 만난 은인에게 선택받을 수 있습니다. 그 선택은 인정이라는 관문을 넘어서야 나에게 오는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조건우 대표가 말하는 은인인 김기열 사장(오른쪽)은 조건우 대표의 성실함과 열정이 오늘의 조 대표를 만든 원동력이라 말한다.

개인정보수집·이용에 대한 동의

-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목적 : 동포사랑 웹진 메일 발송
- 수집하는 개인정보 항목 : 필수항목 : 이메일
- 개인정보 보유·이용기간 : 개인정보 수집 목적 달성시 까지, 고객구독 취소시 즉시파기 ※ 귀하께서는 본 안내에 따른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대하여 동의를 거부하실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개인정보의 수집‧이용에 동의를 거부하시는 경우 동포사랑 웹진을 메일을 통해 받으실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