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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 이야기 경리사원에서 쇼핑몰 운영자가 되기까지 갈리아이템즈 장미향 대표

글 : 허옥희 기자l사진 : 허영철 기자

동시대를 살지만 누구나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탈북민이 디지털 세상의 흐름에 뛰어들어 직업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다. 컴퓨터 하나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장미향 대표를 만났다.

온라인 구매가 일상이 된 세상이다. 물건을 사기 위해 다리품을 팔던 지난날과 달리 앉아서 클릭 한번으로 물건이 집 앞으로 배달된다. 서울에서 뉴욕의 상품을 구매하고 판매하는 세상, 그러나 구매자에서 온라인 판매자로 변신하기는 쉽지 않다. 낯선 사이버상에 자신만의 공간을 열어 매출을 창출하며 소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몰은 누구나 창업이 가능하지만 그래서 또한 전문직업이 되기 어려운 분야다. 부업이 아닌 주업으로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장미향 씨에게는 어떤 노하우가 있을까.

회사와 운명 공동체 2013년 전업주부이던 장미향 씨는 딸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생활용품을 판매하면서 중고마트에 납품도 하는 회사에 취업하였다. 맡은 업무는 경리였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동료들의 호의에 힘입어 즐겁게 일했다. 전반적인 업무를 파악하고 3년 정도 지나자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 사정은 나날이 나빠져 갔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거래처였던 마트들이 줄줄이 폐업하였고 회사 매출은 줄어들기만 했다.
위기의식이 몰려들었다. 회사가 무너지면 나는 어떻게 하지? 회사를 살리고 나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무렵 회사에서 온라인으로 판매 채널을 확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회사엔 온라인 판매를 해본 사람도 없었고 가르쳐주는 곳도 없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했다.
‘내가 이 일을 맡아서 해보자’ 결심이 서자 사장님께 이야기했다. 먼저 온라인 사이트들을 찾아 무료 강의를 신청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사장님은 그를 믿고 온라인 판매 전문가를 찾아 두 달 동안 배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웹 언어를 배우고 상품 등록하는 방법 등 초보적인 이용 방법을 배워 수백 가지 상품을 각종 오픈마켓에 등록했다. 기초 지식을 익혔으니 응용은 그의 몫이었다.
쉽게 이루어지는 성과는 없다. 하나 하나의 채널을 체크하고 상품기획과 광고, 마케팅, 홍보 등 부딪히는 일이 너무 방대하여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온라인 상품 판매에서 매출을 올렸지만 유통 마진이 적었다. 온라인 상품 판매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탓이었다. 자신을 믿어준 사장님의 믿음 때문에도 퇴로는 없었다. 주저앉고 싶은 순간 지나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기회를 만들어온 인생 장미향 씨의 고향은 청진이다. 장마당이 삶의 축이 되던 시절, 청진에서 가장 큰 시장 근처에 자리 잡은 미향 씨의 집은 날마다 붐볐다. 북쪽 국경지대에서 물건을 사거나 팔러 온 사람들이 집에서 밤을 보냈다.
허가받지 않은 여관인 셈이다. 그들을 통해 중국에서 몇 달만 일하면 장사 밑천을 마련할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 장미향 씨는 2005년 두만강을 넘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첫걸음부터 어그러졌다. 일자리를 소개해 준다며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인신매매꾼이었다.
국경 마을은 위험하다는 말에 속아 도착한 곳은 먼 산골의 어느 농가였고, 8살짜리 아이가 딸린 남편은 그녀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멀지 않은 조선족 마을에 가보고 싶다는 말이 시작이었다. 다툼이 일어나자 시어머니는 “얘는 죽여도 모르는 사람이니 반 죽이라”고 아들을 부추겼다.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오직 몸을 낮추고 탈출 기회를 엿보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탈출하려면 중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말을 배웠으나 글을 모르면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짬짬이 이웃집 여인에게 부탁하여 말과 함께 글을 익혔다. 같은 성을 쓰는 씨족 마을에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마을 밖으로 나갈 기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2년 후, 드디어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시장에 간다고 버스에 올랐다. 시장을 돌며 다른 곳으로 향하는 또 다른 버스를 탔다. 세 번이나 버스를 바꿔 타고 마지막으로 하얼빈행 버스에 올랐다.
아는 연줄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 도착하니 어스름 무렵이었다. 불빛 휘황한 도시의 가게를 돌며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살핀 끝에 어느 한 식당 문을 두드렸다. 젊고 예쁘다고 미향 씨에게 홀 서빙을 맡겼는데 당장 문제가 생겼다. 말과 글에 자신이 있었으나 한 번도 중국요리를 먹어보지 못한 그는 주문한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사장은 “도대체 어떤 시골에 살아 이것도 모르냐”고 푸념했다. 당황한 그녀는 주방일이라도 시켜달라고 사정했다. 주방에서 그릇을 닦으며 식당에서 오래 일하려면 무엇을 배워야 할까 생각했다. 설거지는 당장 그만두라고 할 수 있지만 주방 보조는 꼭 필요한 사람으로 보였다. 일이 끝나 숙소로 돌아오며 미향 씨는 시장에서 각종 야채를 산 뒤 써는 연습을 시작했다.
중국요리는 요리마다 다른 방식의 썰기가 요구되었지만 매일 몇 시간씩 집중해서 연습하자 점차 솜씨가 늘었다. 며칠이 지나 손님이 몰려오는 바쁜 시간, 요리사는 숨 돌릴 새 없이 바쁘고 보조가 쩔쩔맬 때 미향 씨는 “제가 도와드릴게요” 하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요리사가 못 미더운 시선을 보냈지만 급한 불을 끄려고 재료를 내줬다. 곁눈으로 그의 솜씨를 보더니 머리를 끄덕인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미향 씨는 식당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시장 쌀가게에서 귀에 익은 조선 말소리가 들렸다. 몇 년 동안 중국어에 묻혀 살았던 미향 씨에게 너무 반가운 소리였다. 말소리를 쫓아 조선족 할머니를 만났고 그의 인도로 교회에 갔다. 조선족 교회였다.
“북한에서 왔죠?” 낯선 전도사의 첫마디에 가슴이 철렁했다.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지만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괜찮아요. 언제든지 이야기하고 싶으면 그때 이야기해요. 북한 사람이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줄게요.”
몇 년 동안 중국 사람이 되었다고, 눈에 띄지 않게 중국 사회에 녹아들어 살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정작 본토박이 조선족은 그녀가 북한 사람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생각이 많아졌다. 미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수록 자신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현실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갔다.
PC방을 찾았다. 며칠 동안 짬을 내 중국어와 한국어로 탈북민의 소식을 검색하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고심했다. 그러던 중 한 곳에서 눈길이 멈췄다. ‘탈북자 동지회’ 사이트였다. 그곳에서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의 소식, 탈북 루트 등에 대한 초보적인 정보를 얻었다.
다음 날 교회에서 전도사를 만났고, 그를 통해 2009년 11월 대한민국에 입국하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현실의 벽을 넘어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온 나날이었다.

장미향 씨는 누구나 노력하기에 따라 온라인 판매 사업에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열정으로 길을 열다 온라인 판매 시장을 개척한 회사는 팀을 꾸렸다. 팀장을 맡은 미향 씨는 팀원들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혼자 하던 일이 세분화되자 훨씬 더 많은 것이 눈에 보였다. 경쟁사 ‘카테고리’를 분석하여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과 고객의 욕구를 파악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사이트마다 충성고객이 있고 그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켜야 합니다. 매일 상품 판매량을 체크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이트를 분석하고 다각도로 봐야죠. 광고도 상위 노출이 기본적으로 좋지만 1순위라고 매출이 높은 건 아닙니다. 상위 몇 순위가 가장 적당한지, 비용에 대한 데이터가 쌓여갔고요. 거기에 머물지 않고 마케팅, 홍보와 함께 판촉 프로모션도 진행했습니다. 이벤트 행사를 기획하고 MD(상품기획자)와 협조하여 행사를 진행하면서 온라인 판매에 대한 여러 노하우를 익힐 수 있었고 그것은 회사의 매출로 나타났습니다.”
계획대로 모든 일이 척척 진행된 것은 아니다. 제품 수급에 차질이 생겨 제조사와 언쟁을 벌여야 했고, MD와 협상이 되지 않아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장미향 씨는 광고 담당자가 되기도 하고, 상품기획자가 되기도 했다. 때로는 진상 손님과 씨름하고 또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몇 천 개나 되는 택배 포장을 맡았다.
힘들었지만 보람 있는 나날이었다. 회사가 당초 계획했던 연 50억 원보다 훨씬 높은 매출을 만들어낸 데는 미향 씨의 노력도 깃들어 있다고 당당히 말한다.

새로운 도전 2021년 장미향 씨는 9년 동안 열과 성을 다한 회사에서 퇴사했다. 새로운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진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로 다진 결심이다. 사업자로 등록하고 일을 시작했다. 자신의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애정을 기울인 전 회사 일도 조금씩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일할 수 있고요. 또 다른 일을 하면서도 가능합니다. 매 온라인 사이트는 나름의 특색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위 10위권의 판매자들은 어떻게 홍보하고 판매하는지를 살펴보고 상품 조사, 리뷰를 하나씩 읽고 제품의 가격, 상세 설명을 다시 구성하여 올립니다. 매일 매출 대비 광고비 체크, 사이트의 키워드 그리고 경쟁사의 판매량도 꼼꼼히 살핍니다. 저는 대략 1700개의 제품을 등록하고 있습니다. 하루 몇 시간만 일하고도 얼마든지 매출을 올리고요.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아이를 양육하며 일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컴퓨터를 배운 사람이라면 노력하기에 따라 누구나 가능한 일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그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탈북민도 도전하고 배우면서 새로운 흐름에 합류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 저절로 머리가 끄떡여진다.
“우리도 아날로그 방식에만 매여 있지 말고 인터넷 시장에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어요. 상당히 유망한 직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누구든지 저의 도움을 바란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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