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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 이야기 타워크레인으로 통일을 준비한다 대성타워이엔씨 이준 팀장

글 : 허옥희 기자l사진 : 허영철 기자

이준 씨는 타워크레인을 설치·해체하는 팀을 이끌고 일한다. 건설 현장에 위엄 있게 서 있는 타워크레인(기중기)은 건물의 높이와 함께 매일 올라간다. 바라보기도 아득한 높이에서 한 치의 오차 없이 중심을 맞추고 해체·설치해야 하는 일은 기술과 경험, 그리고 팀워크를 요구한다. 젊은 세대가 선택하기 어려운 길을 걸어온 그의 행로를 더듬어본다.

한겨레고등학교를 졸업한 19살의 이준 씨는 대성타워이엔씨에서 타워크레인을 설치하고 해체하는 일에 첫발을 디뎠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9년 가까운 시간을 꾸준히 한길을 걷고 있다.

고아 이준 씨에게는 행복하게 추억하는 어린 시절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와 어린 이준까지 네 식구가 사는 단란한 가정이었다. 그가 9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이남 출신 누군가의 가족을 찾아준 죄로 감옥에 끌려갔고, 그 뒤 세월이 흘러도 돌아오지 못했다. ‘고난의 행군’ 시절 홀로 남은 어머니는 두 자녀를 데리고 살림을 꾸려갔다. 그가 16살이 되던 해, 누나는 이미 중국으로 떠났고, 어머니도 이준 씨와 함께 그 땅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 ‘한국으로 갈 기도’가 있다고 보위부에 체포된 이준 씨와 어머니는 각각 다른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고, 그 길로 어머니와도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1년의 감옥살이 끝에 풀려났지만 이준 씨는 갈 곳도 머물 곳도 없었다. 그 땅에서 피붙이 하나 없이 고아가 된 것이다.

타워크레인 현장은 순간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로 돌아오기 때문에 단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몸으로 부딪히다 이준 씨는 먼저 탈북한 누나의 도움으로 2013년 대한민국에 입국하였다. 부모 없이 누나에게 의지하던 그는 제힘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대학 공부와 함께 아르바이트로 살림을 꾸려가는 누나를 돕고 싶어서였다. 또래들이 모두 대학에 진학해도 ‘대학의 전공을 살려 일하지 못하면 공부를 왜 하지?’ 하는 생각에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기술을 배우고 싶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4개월간 용접을 배웠다. 정작 건설 현장에 부딪히자 청년이기보다는 아직 소년에 가까운 어린 그가 마음 붙이기 쉽지 않았다. 방황하는 그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대성타워이엔씨’ 이지영 사장이다. ‘대성타워이엔씨’로 출근한 이준 씨가 처음 배치된 곳은 타워크레인을 설치하고 해체하는 팀이었다. 팀은 5명으로 구성되는데 그는 소속 인원 외였다.
정식 팀원도 아니고 건설 현장이 처음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일을 시키지 않으니 어떤 날은 종일 양지바른 곳에서 꾸벅꾸벅 졸다 오는 날도 있었다. 며칠이 지나 팀에서 일을 배우는 기회가 회사에서 교육비를 지불한 대가임을 알았다. 하루하루 흘려보낸 시간이 돈을 지불한 것이라 생각하니 철없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열심히 배우자.’ 그날부터 그는 달라졌다. 외국어로 된 장비 이름, 기술용어를 외우고 시키지 않는 심부름도 찾아서 했다.
3개월이 되니 장비가 하는 일을 알게 되고 6개월이 지나자 작동 방법이 눈에 보였다. 이준 씨는 3년 만에 타워크레인 운전기능사와 비계 기능사 국가자격증을 취득했다.

제 몫을 하는 팀원 타워크레인 설치·해체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원 간 소통이다. 높은 공간에서 무거운 설비를 움직이는 노동은 다섯 사람의 한결같은 호흡을 요구한다. 눈짓만으로 신호를 알아듣고 말하지 않아도 다음 행동을 맞추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삐끗하여 타워크레인의 중심이 맞지 않으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팀은 한번 구성되기도 어렵고 팀원이 되면 반드시 제 몫을 감당해야 한다.
타워크레인 설치 기사는 모두 나이 지긋한 50대 이상이다. 40대도 어린 나이로 보는 업계에서 20대 이준 씨는 젖먹이 취급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준 씨는 형님이 아니라 아버지, 할아버지뻘이 되는 이들 속에서 진땀을 흘렸다.
나이 차이만으로도 어려운데 그들의 말투도 사근사근하지 않다. 작은 실수도 생명을 위협하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의 조그만 잘못도 무서운 추궁으로 돌아오게 된다. 기본이 40~50m의 공중이고 높을 땐 500m도 올라간다고 하니 작업자들이 느끼게 될 긴장감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제 몫을 하지 못하면 애당초 팀원이 될 수 없는 것이 이 분야의 일입니다. 기계나 장비에 대해 배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인간관계가 힘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욕을 달고 살았으니까요.”
그 시절을 돌아보며 이준 씨가 하는 말이다. 고함소리에 질려 때로는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여기 아니면, 하고 속에서 무엇인가가 불끈 올라온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당장 그만두고 내려오고 싶어도 자기가 빠지면 다른 사람이 두 몫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잘 안다.
올라가기도 어려운 공중에서 긴장 속에 일하니 차마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 불리한 상황이 순간순간 그를 잡아준 버팀목 역할을 해주었는지도 모른다.

타워크레인은 건설 현장의 꽃이라 불릴 만큼 없어서는 안 되는 작업이지만 오랜 시간의 숙련이 필요한 분야이기도 하다.

일과 배움을 병행하다 현장에서 3년을 보내자 이준 씨는 딜레마에 빠졌다. 밥 먹여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배움이 절실함을 느꼈다. 또래와 떨어져 윗세대와만 소통하니 시대에서 밀려난 소외감 같은 느낌도 들었다. 쉬는 날 찾을 또래도 몇 없는 그에게 세상은 낯설기만 했다.
나이 차이가 많은 선배 한 사람이 어느 날 물었다.
“너 중국에서 왔냐? 외국인은 업계에서 받아주지 않는데?”
“저는 북한에서 왔습니다. 한국 사람입니다”
이준 씨는 비로소 현장에서 자신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음을 알았다.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텃세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역량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스럽게 사회에 녹아들고 함께 숨 쉬려면 밥 먹고 사는 기술과 함께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와 그 속을 살아내는 인간학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면서 배울 수 있는 대학교를 찾았다. 전공을 고민했다.
“서울사이버대학교에 입학하여 사회복지학과를 택했습니다. 사회의 흐름을 알고, 시대를 배우고 또 또래들과 네트워크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어려웠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어 감사했고요. 사실 이론도 배웠지만, 더 많이 기억에 남은 건 실생활에서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그리고 나와 다른 의견도 틀린 것이 아닌 다름이라는 것,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어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 해소가 많이 됐습니다.”

솔선수범하는 젊은 팀장 보통 숙련되어 팀을 이끌기까지 6~7년이 걸리고 빨라야 5년이라고 하는데 이준 씨는 4년 만에 현장 상부 팀장이 되었다.
하부에서 기능 수준이 높은 한 사람의 팀장이 조종하고 상부 팀장은 건물 높이와 함께 매일 올라가는 공중에서 유압모터를 운전하고 팀이 호흡을 맞추도록 이끌어야 한다.
20~30년을 한 분야에서 일한 팀원들은 나름대로 고집이 있고 개성도 강하다. 만년 막내인 이준 씨가 연장자들에게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말하기도 어렵지만 주문대로 하지 않으면 더욱 가슴이 탄다. 그럴 땐 별수 없다. 자신이 그만큼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어려운 일은 그뿐이 아니다. 어느 날 탈북민 후배가 볼트 조이는 기계에 손을 넣어 손가락 한 마디가 잘리는 사고가 생겼다. 사고가 나면 팀 분위기가 엉망이 된다. 그런 날은 손맥이 풀려 일하기 힘들다. 전쟁의 승패도 군사의 기세가 좌우한다고 하지 않는가. 건설 현장에서는 사고를 낸 팀에게 일을 맡기지 않는다. 팀뿐 아니라 소속 업체가 하청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실수가 회사의 매출과 직결되고, 다른 사람의 일자리마저 위협하는 것을 아는 이준 씨의 하루는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몸을 낮추고 자신보다 팀원을 먼저 돌보며 필요한 곳을 찾아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일한다.
몇 년 전 미숙련공 팀원이 있었다. 열심히 하려는 의욕과는 달리 실수가 반복되자 다른 팀원들이 “저런 사람에게 목숨을 맡길 수 없다”며 반대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팀을 새로 꾸려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 적도 있었다.
타워크레인 작업은 아침 6시, 안전교육 2시간으로 시작된다. 교육을 받지 못하면 현장에 투입되지 못한다. 한 명이라도 늦으면 그날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니 한명 한명의 책임감과 함께 팀을 이끄는 이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독이고 합쳐지고 자신을 죽이며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은 이준 씨 자신이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 과정이었다.

타워크레인으로 통일을 준비한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타워크레인은 제각각 다르다. 높은 고도에 최적화된 것과 함께 작은 타워크레인도 많다. 제작된 연도와 나라에 따라 조금씩 다른 특징이 있다.
건설업계에 쓰이는 타워크레인을 종류에 관계없이 다 경험하고 설치, 해체해 보는 것이 이준 씨의 목표다. 크고 작은 전국의 타워크레인을 모두 설치·해체할 수 있는 기사는 드물다고 한다.
“타워크레인은 없어서는 안 되는 건설 현장의 꽃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후계를 양성하기 어렵고 오래 걸립니다. 9년째 일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다뤄보지 못한 타워크레인도 많아요. 새로운 모든 기계에 정통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업계에서 일인자가 되어 고향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통일이 되면 건설할 일이 정말 많겠죠. 그때 타워크레인을 제 손으로 설치·해체하는 거지요. 언젠가는 저의 꿈이 이루어지리라 믿고요. 특별한 기술보다 숙련을 요구하는 일이고 기술을 배우면 급여도 높으니 새로운 직업을 고심하는 분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오늘도 이준 씨는 건설 현장에 우뚝 솟은 타워크레인과 함께 있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하루하루로 인생의 한 시절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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